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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01:31

. 일상2013. 4. 4. 01:31


오늘 술약속이 없었어도 책을 읽을 수는 없었을 거다. 이 곳을 떠나기 전에 모든 과거를 극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깨달은 하루. 당신의 존재를 넘어서지 않으면 나는 성장할 수 없다. 그걸 인정할 여유가 이제는 생겼다. 취해서 한 짓이지만 내일 후회하지는 않을 거다. 모든 깨달음은 사후적이라고 했지. 오늘에서야 당신이 얼마나 나에게 큰 짐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닫는다. 


담배 한 갑을 모조리 폈으니 내일은 고생 좀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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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4. 3. 23:49

일상2013. 4. 3. 23:49


왜 하필 오늘 이 모든 상황이 닥쳐오는 걸까. 과거와 현재와 그 이음새가 동시에. 당하는 나는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걸 바라는 것조차 부당하다는 걸 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 댓가로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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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4. 3. 03:01

하비의 대안 읽은 것들2013. 4. 3. 03:01


반자본주의적 대안운동은 변증법적 운동이라는 자본주의의 '형식'을 취해야 하며, 그 형식을 통해 공혁명(co-revolutionary) 또는 맑스가 말하는 동시혁명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가 그토록 전세계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움직임의 토대에 기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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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4. 2. 19:24

가라타니는 내 애인이 아니다 일상2013. 4. 2. 19:24


왜 가라타니 고진을 말할 때 맨날 고진이라고 쓰게 되는지 모르겠다. 내 애인도 아닌데 시타노나마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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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0)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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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기본적으로는 자연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것. 공간/시간에 대한 정복을 통해 '시공간 압축,' 즉 자본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시공간이 형성됨.


실질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라인, 가라타니의 용어로 말하면 '세계상품'의 트렌드를 바꾸면 된다. 또는 지리적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것. 여기에는 식민주의적 지배가 물론 포함됨. 


그런데 만약 외부적으로 확장할 만한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다음 차례는 무엇인가? "그러면 (막대한 부채를 진 미국처럼) '개인소비'가 아니라 (현재의 중국처럼) 급속한 생산의 증가가 잉여자본을 흡수할 수 있는 수요를 낳는 새로운 생산의 중심지를 만들어내면 된다."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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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 모든 형태의 발화는 그 대상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뒤에'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한편 타자를 완벽하게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내 발화의 불완전함에 지나치게 수치심을 느끼는 건 일종의 완벽주의적 증상이겠다. 내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 조급성과 안이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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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4. 1. 02:23

눈 마주치기 & 기타 일상2013. 4. 1. 02:23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눈을 잘 마주치는 편이 못된다. 웬만큼 편한 사람이 아니면 잘 못한다. 그런 내가 의식적으로 상대의 눈을 쳐다보는 때가 딱 두 경우 있다. 첫번째는 상대가 집요하리만큼 내 눈을 쳐다봐오는 타입의 사람일 경우. 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안구가 견디는 한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소심한 사람이 아닌데 유난히 내 눈만을 못 쳐다보는 경우. 이런 경우에는 가학적인 호기심이 생겨버려 상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 사람이 내 눈을 피하는 경우에는 가만히 얼굴과 표정을 관찰한다. 조금씩 분위기가 편해지기 시작하면 눈을 마주쳐오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는데, 그 세세한 변화를 의식하고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그걸 한 번 해 볼까 싶다. 틀림없이 재미있을 거다. 지옥에 떨어뜨리든지 말든지. 어차피 이거 안해도 난 지옥행임.


+


안 쓴지 이년정도 된 싸이 다이어리를 갑자기 전부 전체공개로 돌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어 그렇게 했다. 어차피 지금 싸이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상관없지. 과거를 전부 해방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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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3. 31. 19:34

걍 잡생각 읽은 것들2013. 3. 31. 19:34


모 유명 문화평론가의 글이 섹시하다는 얘기가 있길래 찾아 읽어봤는데,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와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글을 보고 식겁했다. 2004년에 쓴 글이니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하다 싶기도 했지만 외부기고는 2000년부터 했던데. 요즘 쓴 글들도 확 필이 오는 건 없더라. 그냥 성실하고 부지런한 글쟁이라는 느낌. 영문학 박사과정에 있다는 프로필을 보고 납득함.   


나는 섹시한 글을 쓰는 사람이 좋다. 내가 그렇게 못하고 또 그럴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그런 위치에 없었어도 나같이 지리한 인생을 살아온 인간은 섹시한 글 같은 건 못 쓴다. 그냥 잘 쓰는 것과 섹시하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그것은 완전히 진보적인 것과도, 완전히 현학적인 것과도 다르다.


생각과 글의 섹시한 정도가 언제나 일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유명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P모씨는 생각이 아주 섹시하지만 글은 지나치게 정갈하다. 이건 기자들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인 것 같으니 뭐 어쩔 수 없지. H모씨는 솔직하기는 한데 생각도 글도 섹시하지는 않다. 얼굴은 남자답고 섹시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만. 자뻑으로 상대방을 피로하게 만드는 타입. 


내가 사적으로 잘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자뻑인간이 있다. 분하게도 그는 생각도 말도 글도 섹시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심지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겨야 하나? 내가 병아리였던 시절에 중닭 정도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에 대한 동경이란 무섭다. 혹시 석사 첫학기생이 대학원에서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누군가를 함부로 동경하지 않는 것이라 말하겠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건 그와 나의 사적인 관계와, 그 관계에 얽힌 내 감정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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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3. 31. 18:45

지슬 본 것들, 들은 것들2013. 3. 31. 18:45


... "왜 좀 더 리얼하게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관객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지슬]같은 영화는 당사자들이 여전히 생존해 계시는데, 그 분들이 기억하시는 것보다 더 아프게 찍기 싫었어요. 만약 더 아프고 더 충격적으로 찍는다면, 그 분들은 다시 그 날을 맞이할 텐데…. ... "그 날보다는 좀 덜한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지슬]에선 역사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그런 아이러니컬한 시대상을,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 감정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충돌의 느낌'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판단은 관객의 몫일 테고, 감독의 입장에서 "그때는 무조건 슬픈 시대였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그 시대에도 웃음이 있었을 거고요. 저도 겪지 못했던 시대니까요. 이 영화에서 전제는 이런 거였어요. 앞 부분에 '신위(神位)'라는 중간 제목이 나오고 주민들이 감자를 먹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 사람들은 귀신이다"라는 생각에서 찍은 거예요. 마치 그들이 제사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요. 이 사람들은 이미 신령들이고 한라산의 영신(靈神)들인데, 그런 존재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인간들과 똑같은 관점에서 영화를 찍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했고요.


- 네이버 영화매거진 오멸 감독 인터뷰 중.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1679)



... 선댄스 영화제(월드 시네마 극영화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이후 “한국 독립영화의 쾌거”라는 기사를 보고 좀 의아했어요. 냉정히 말해 한국 독립영화가 제주에 미친 영향이 없었거든요. 인프라도 현장이 돌아가는 방식도 제주와 서울의 그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많은 한국 영화가 제주의 풍경을 찍어갔지만 제주의 삶과 문화에는 관심이 없었죠. 갑자기 하나로 묶이니 당황스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 네이버 김혜리칼럼 '지슬이라는 신비롭고 외딴 섬'에 포함된 감독 인터뷰 중.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28&aid=0000000011)



+


'지슬'은 분명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중후반부에 들어서면 관객의 감정선을 과도하게 건드리려는 몇몇 부분의 시도들이 신경을 거스른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한 수준의 성취를 이뤄냈다. 감독 특유의 몽환적 영상미는 '지슬'의 가장 뛰어난 점 중 하나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감독의 예술적 내공은 장면 하나하나마다 여실히 드러난다. 순덕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후 두 남자가 뛰어 돌아가는 산의 능선이 죽은 순덕의 나체의 옆 라인과 천천히 겹쳐지는 장면은 최소한 수 년간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제주도의 땅과 여성성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감독의 의도는 일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제주도의 여성성이 영화 내에서 너무도 세심하고 동시에 압도적인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불평할 마음도 엄두도 생기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내 기분이다.) 내러티브의 구성과 각 인물들의 캐릭터를 살리는 세심한 연출 역시 돋보인다. '지슬'의 영화적 시선은 어느 한 캐릭터에 천착하지 않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가히 지역예술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한국 예술계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지역문화와 지역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강조된 점도 좋았다. 예술성과 정치성과 지역성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슬'은 수작의 범주에 속한다. 


올해 들어 본 영화 중 단연 최고였다. 혼자 한 번 더 볼까 싶다. 가족들을 끌고 갔더니 마음대로 울 수도 없었고 엔딩크레딧도 다 못 보고 나옴. 엔딩크레딧 무조건 봐야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그래야 할 종류의 것이었거든. 중간까지 안 울고 괜찮았는데, 영화 중반부쯤에 갑자기 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제주도 곳곳에서 지방이 타들어가 사라지는 엔딩을 보면서 두 손을 모았던 건 그래서였다. 


여담이지만 극장가기 전에 엄마가 영화의 배경을 이야기해 달라길래 제주 4.3사건에 대한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이념영화네?"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 순간 뭔가 더 설명할 힘이 빠져버렸다. 괜히 다같이 보자고 했나 싶었다. 그럼에도 가족들에게 이 영화를 소개한 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유와 소통이 말처럼 쉬울 것 같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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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좀 취해서 하는 말이지만 지금 기분 같아선 당신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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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