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잼 시이나 링고 특집 본 것들, 들은 것들2019. 11. 19. 17:19
칸잼 시이나 링고 특집이라는 흔치 않은 두 최애의 접점을 즐겁게 감상했다. 사실 링고에 끌렸던 건 내가 페미니즘에 눈뜨기 한참 전이었고 당시 노래들을 들으면서 딱히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었다. 그 때의 기분을 지금 시점에서 언어화해보자면 그녀의 보이스톤이나 표현력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메이저 일음판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bossy하면서 에로한, 좀 더 세상에 유해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무게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던 거 같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유약함이나 부끄러움 등등이 있었기에 그 강함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여러 의미로 대단한 퍼포머(로서의 여성).
가장 감동적이었던 파트는 작곡 테크닉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 본인도 여기서 전조를 몇 번 하면 더 좋게 들리지 않을까 의식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노래를 만들게 되면 뭔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반신으로 곡을 쓰는 느낌, 자궁으로 쓰는 느낌이 안 난다"고 말하는 순간 스튜디오의 햐다인도 감탄하고 나도 너무 감동했다. 프로이드가 멍청해서 묘사하지 못했던 여성의 리비도를 이렇게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지난 앨범 트랙 사이의 간격이 너무 짧은 것에 대한 질문에도 설마 그렇게 답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호르몬 등 여러 이유로 통제할 수 없는 여성의 급격한 기분의 변화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결과라고. 그런 상황에서 "요캇따네~ 쟝!(장조)" 이렇게 곡이 끝나는 기분은 되지 않지 않나요? 라고 질문하는 게 또 끝내주는데 이 말은 곧 음악에서의 남성중심적 서사구조에 대한 반발에 다름아니기 때문.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짜릿했고 그야말로 empowered되는 느낌. 너무 감동적이었다. 히로나가 아나 말마따나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receptive한 창작자인 줄 전혀 몰랐고 여성이라는 주제를 단순히 테마로만 삼는 걸 넘어서서 자신의 작품에 구조적인 차원으로 녹여내는 노력을 해왔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도쿄지헨 활동 이후 주로 추구하는 장르가 락에서 재즈로 바뀐 뒤로는 거의 안듣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십대의 많은 순간들을 격정적으로 위로하고 또 자극했던 소중한 뮤지션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어 순수하게 기쁘다.
한편으로는 그 햐다인 오른쪽에 앉아있던 작곡가인지 평론가인지 모를 패널이 온갖 음악이론을 끌고 와서 이론적으로 곡 설명을 실컷 하고 난 뒤 링고가 자기는 이론 같은 건 의식 안 하려고 하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때 그 패널이 느꼈을 패배감을 예술평론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느낌. 이래서 예술에 대해 신비평식으로 클로즈리딩하면서 온갖 이론의 언어를 빌려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구린 거다. 창작자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과 그 무의식을 형성한 외적 요인들, 그 모든 것들이 발생시키는 효과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음.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코니키스시테를 좋아한다는 스바루가 있었을 때 링고 특집을 했다면 스바루도 나도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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