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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33

  1. 2013.12.06 On Chandler's "Red Wind"
  2. 2013.11.07 sentimentality and hard-boiled and the west
  3. 2013.10.05 * 2
  4. 2013.08.02 푸코 7
  5. 2013.08.02 푸코 6
  6. 2013.07.25 푸코 5
  7. 2013.07.25 푸코 4...라기보다는 구조주의적 권력 이론의 포지셔닝
  8. 2013.07.19 푸코 3
  9. 2013.06.24 푸코 2
  10. 2013.06.24 푸코 1
2013. 12. 6. 15:29

On Chandler's "Red Wind" 읽은 것들2013. 12. 6. 15:29


In “Notes on Raymond Chandler’s ‘Red Wind’” (ESTSF 9, i: 166–72), Marc Seals points out some of the features that make “Red Wind” a good story to study and teach: plot devices such as a necklace, pearls, and blackmail; the manipulation of “cultural stereotype to alternately fulfill and thwart” what the audience expects; the protagonist’s interest in the game of chess; the weather motif; and the use of guns to provide “Freudian phallic imag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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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11. 7. 09:59

sentimentality and hard-boiled and the west 읽은 것들2013. 11. 7. 09:59

Cassuto가 말한것처럼 하드보일드 내러티브 내에 이미 센티멘탈리티를 향한 강한 욕망이 내재해 있다면, 그것과 LA라는 공간과의 관계는 없는가? 모든 기간의 미국 역사를 통틀어 욕망의 장소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던 서부, 캘리포니아는 하드보일드와의 관계뿐 아니라 센티멘탈리티와의 관계도 있을지도. 생각해 볼 것. 왜 엘에이가 하드보일드의 주요 공간이 되었는지, 그것과 센티멘탈리티와의 숨어있는 관계는 없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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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10. 5. 18:36

* 일상2013. 10. 5. 18:36


빨리 숏페이퍼 준비해야 될 마당에 마술이 시작되는 바람에 다 치우고 하루 종일 잤다. 다시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잠이 안 온다. 덕분에 괜히 싸이랑 네이버 블로그들 돌아보다 센치해졌다. 간만이다 이런 느낌.


*


요즘 우치피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고 아사드 형제의 피아졸라를 듣는다. 운동할 때 듣는 엠플로 빼고는 거의 피아졸라의 반복이다. 예전에 즐기던 것들만 다시 보고 듣고 있는 셈인데, 퇴행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뭔가에 투자할 에너지가 잘 생기지 않는다. 서른을 넘긴 이후로 최소한 육체적/정신적 에너지 면에서는 경제적으로 살고 싶어졌다. 거의 빙과의 호타로 수준이다. 


*


슈스케의 플랜비를 보면서 왜 이렇게 묘한 기분이 드는가 싶었더니 그 제일 나이많은 푼수 남자가 전전애인과 닮아서였다. 푼수인 건 하나도 안 닮았는데 생긴 게 정말 닮았다. 그는 3년간 나에게 그야말로 순정을 바쳤지만 그 순정에 질린 나는 미네르바를 모른다는 이유로 그를 찼다. (물론 그 어이없는 헤어짐의 값은 정확히 반대급부로 돌아온 그 다음의 연애로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변증법적 연애인 셈이다. 왜 변증법이라고 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은 그 의미를 알아주겠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같은 여자와 헤어질 수 있었던 걸 그가 축복으로 여기길 바란다. 천사같은 여자와 다정한 연애를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헤어지고 몇 년 뒤 괴로움 속에서 그를 몇 번 떠올렸는데, 상상속에서조차 그는 나보다 더 예쁘고 착한 여자와 모자람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간만에 글을 쓰니 좋다. 이제는 말도 많이 하고 싶지 않아서 내 기분을 표현할 수단이 줄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끔 블로그나 들어와서 신변잡기글이나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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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8. 2. 16:05

푸코 7 카테고리 없음2013. 8. 2. 16:05


이 통치화란 "어떻게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물음과 뗄 수 없다. ... 비판적 태도는 특히나 '통치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형태를 띤다. ... 이와 같은 비판적 태도는 항상 통치에 대한 내재적 거부이며, "다른 무엇과 맺는 관련 속에서만 존재"한다. ... "비판은 자발적인 불복종이자 성찰을 통한 비순종의 기법일 것입니다." 

(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358-359)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1983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요약>중 푸코는 칸트와 프랑스혁명의 연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프랑스혁명이라는 사건 그 자체에 있기보다 이에 열광하는 주변 사람들에 있었다. 칸트가 흥미를 느낀 점은 혁명이라는 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혁명이 갖는 의미, 즉 진보에의 열광에 있었다. 왜냐하면 이 열광은, 만인의 자유로운 선택, 정치체의 재구성 가능성을 향해 열린 에토스가 형성된 증표였기 때문이다. 푸코에게 문제는, 봉기와 그것이 내포하는 집단적 힘이 억압과 테러로 전화되는 데 빠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적극적 방법이었으며, 그는 이를 위한 기능 중 하나를 혁명에 열광하는 에토스, 비판의 에토스의 형성에서 찾는 것이었다. 

(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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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8. 2. 15:27

푸코 6 읽은 것들2013. 8. 2. 15:27


"평민성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평민적인 것'(또는 어느 정도의 평민성)은 존재한다. 여러 신체와 여러 영혼 속에 어느 정도의 평민성은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 개인들 속에도, 프롤레타리아트 속에도 있으며 부르주아지 속에도 있다.  ... 이렇게 평민적 부분은 권력 관계의 외부라기보다 그 한계이며, 그 이면이며, 그 반동인 것이다." 이 권력의 구심력에 대해 항상 원심력으로 작동하는 운동으로서의 평민적 부분을 감소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평민적인 것을 평민적인 것으로서 활용하는 방법, 즉 '비행자'를 활용하는 방식인 것이다. (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339-340, 각주 1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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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7. 25. 01:39

푸코 5 읽은 것들2013. 7. 25. 01:39


<앙티-오이디푸스>의 영어판 서문에서 푸코는 특이한 견해를 제시한다. 푸코에 따르면 <앙티-오이디푸스>는 반파시즘의 책이다. 여기서 파시즘이란 ... "우리 모두의 속에 있으며 우리의 정신, 일상 행동을 홀리고 [일상 행동에서] 분리할 수 없는 파시즘, 우리에게 권력을 사랑하게끔 강요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 자체를 우리더러 욕망하게끔 만드는 파시즘"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파시즘이란 권력에 대한 복종화를 욕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푸코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다양체화와 전위를 통해 다양한 배치를 '탈개체화하기.'"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104-105)


---


이거다! 이거야!




참고로 <앙티-오이디푸스>의 영어판 서문에서 인용한 저 마지막 문장이 포함된 단락은 아래와 같다.


Do not demand of politics that it restore the "rights" of the individual, as philosophy has defined them. The individual is the product of power. What is needed is to "de-individualize" by means of multiplication and displacement, diverse combinations. The group must not be the organic bond uniting hierarchized individuals, but a constant generator of de-individu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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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구조주의적 권력 이론이 정신분석에서 빌려온 것은 오히려 대상의 '내면화' 또는 '받아들임'(프로이트) 메커니즘, 그리고 이로부터 귀결된 '주체의 탈중심적 위치'(라캉)과 관련된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주체가 어떤 대상에 의해, 즉 스스로 내면화되면서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주체는 이 '어떤 것'에 대해 '탈중심적'이다. 내면화된 시니피앙이 주체를 규정하듯이, 내면화된 권력은 그 내면화의 효과에 의해 주체를 주체 자체의 내부로부터 규정한다. 주체 자체는 권력의 이런 내면화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그 때 주체는 내면화된 권력에 대해 '탈중심적'이다. 이런 이론 형성은 알튀세르, 들뢰즈·가타리, 푸코가 발전시킨 권력 이론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라캉의 '구조주의적' 이론에 비판적 접근법을 취했지만 이로부터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영향받은 알튀세르는 호명의 메커니즘과 이데올로기적 재인/오인의 메커니즘을, 들뢰즈·가타리는 자본주의적 가족 체계에 의한 오이디푸스적 복종화의 메커니즘을, 그리고 푸코는 규율적 장치들에 의해 실현된 권력의 투여 메커니즘과 내면화 메커니즘을 각각 이론화했다. 겉보기에는 상이한 이 세 가지 이론작업은 권력의 내면화에 의해 실현된 복종화, 그리고 주체의 '탈중심적' 위치라는 동일한 개념을 공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처럼 라캉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 이론에 그 접근법의 바탕을 둔 이런 이론을 우리는 '구조주의적' 권력 이론이라고 부른다.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19-20.)


---------------------


후기구조주의의 '결여된 주체'의 탈중심성을 권력 이론과 연결시키는 명쾌함. 나를 포함한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학자의 박사논문(정확히는 이를 토대로 수정한 책)을 굳이 번역해 출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서론만 읽어도 알 수 있다. 낯익지만 신선한 주제, 그 주제의 적확한 포지셔닝, 거기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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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7. 19. 16:19

푸코 3 읽은 것들2013. 7. 19. 16:19


"바꿔 말한다면, 그가 '타자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는 '그 자신에게' 위험한 것입니다."


당신은 위험하다. 누구에게 위험하냐고? 바로 당신 자신에게.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당신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이 도착된 논리는 근대 주체의 존재방식을 그 안쪽에서 비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나에게 수수께끼이고, 또 그러한 나는 수수께끼를 해독할 수 있는 타자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설령 그것으로 내가 희생할지라도. 주체가 그 존재를 긍정받는 동시에 타자에게 양도되는, 보호 및 보장과 강제가 한데 포개지는 위태로운 장면을 여기에서--통상 우리 눈앞에 드러나던 경계를 붕괴시킴으로써--발견할 수 있다. 근대적 주체가 자신 안에 끌어안은 불투명성--우리 자신도 건드릴 수 없는 불투명성--을 품고 있고, 이는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나의 외부에서, 즉 진리의 심급에서 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타자의 통제에 스스로 복종하는 주체가 형성된다. 이 메커니즘에 의해 해당 주체가 법의 경계까지 끌려 들어가는 것, 이른바 보안처분이 처벌을 대신하는 것과 같은 사태, 이 치환의 경향이 근대사회 안에 일관되게 상존한다는 관측이 푸코의 전제이다. 그리고 이 경향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과 지식이 엮어 내는 배치야말로 <감시와 처벌>이래 푸코의 권력론이 향하는 주요 장소이자, 이후 푸코의 온갖 관심을 저류에서 떠받치는 한 참조축이라 보인다. 


(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130-131)


 -----


앎에의 의지, 진리에 대한 욕망을 토대로 근대 주체를 정의하는 방식은 푸코의 여러 개념들 중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매력적인 것이었다. 한편 그러한 논의 자체가 이미 그가 그렇게도 비난했던 정신분석학의 주장들을 이미 함의하고 있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다. 물론 그가 정신분석학을 싫어했던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모든 사유에서 정신분석학을 제외시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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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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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2 읽은 것들2013. 6. 24. 12:43


... 혹여 우리가 푸코의 분석을 이해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푸코는 그런 희망까지도 폭파시켜 버리고 만다. 게다가 그는 그런 탈출구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이는 다소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푸코의 분석은 악을 밝혀내는데 주력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분석이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될 결과, 다시 말해서 이 악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것이 선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스스로 거리를 두고자 하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 "Foucault on Freedom and Truth," <Foucault: A Critical Read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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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6. 24. 12:27

푸코 1 읽은 것들2013. 6. 24. 12:27


"푸코는 주체 개념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그가 개인을 통하여 인간사회 전체를 분석하고자 시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그가 사회를 조직화하는 데 주체와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푸코에게 주체와 경제와 같은 개념은 겉으로는 자명한 본질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혹은 변화할 수 있는) 개념들에 불과하다." (사라 밀스,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28)


"I remain convinced that every philosophy that eliminates the category of the subject becomes unable to serve a political process." (Alain Badiou, <The Concept of the Model>)


주체의 불안정성과 정치/사회적 혁명성을 주창하는 것이 어떻게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푸코를 읽는 목표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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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