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 자아의 존재를 느끼고 똑바로 서면 된다. 그를 나와 같은 약하고 작은 인간으로 동등하게 봐주면 된다. 그 때는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
소위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아집이 센 편이라고 느꼈다. 그들이 생각을, 회의(懷疑)를 좀 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지금 정말 자기 존재의 완성태에 이르렀는지 물었으면 좋겠다. 감히 그렇다고 답 못할 것이다. 겸손함을 잊고 스스로 존재의 완성태에 이른 양 행동하면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 같다. 존재의 떨림과 시간의 무게를 살려내고, 그 속에서 호흡하면서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로서의 출발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감히 스스로 완성태에 이르렀다고 답하지 못하는 존재라면, 당연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 그런 의미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 자세, 그 자리매김에 동의한다면 우리 모두 가장자리에서 만나자.
프레시안 인터뷰 [가장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홍세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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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인터뷰를 진보진영에게가 아닌, 사유하는 인간 모두에게의 일갈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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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에 대한 감상: 사람은 변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도 변하지 않는다. 과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됐던 말들은 똑같이 현재에도 상처가 되더라. 이래서 한 번 헤어졌던 사람은 만나는 게 아니라고들 하나보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역사가 두 번 반복되는 거라면 이번이 소극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