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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7. 09:59

sentimentality and hard-boiled and the west 읽은 것들2013. 11. 7. 09:59

Cassuto가 말한것처럼 하드보일드 내러티브 내에 이미 센티멘탈리티를 향한 강한 욕망이 내재해 있다면, 그것과 LA라는 공간과의 관계는 없는가? 모든 기간의 미국 역사를 통틀어 욕망의 장소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던 서부, 캘리포니아는 하드보일드와의 관계뿐 아니라 센티멘탈리티와의 관계도 있을지도. 생각해 볼 것. 왜 엘에이가 하드보일드의 주요 공간이 되었는지, 그것과 센티멘탈리티와의 숨어있는 관계는 없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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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8. 2. 15:27

푸코 6 읽은 것들2013. 8. 2. 15:27


"평민성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평민적인 것'(또는 어느 정도의 평민성)은 존재한다. 여러 신체와 여러 영혼 속에 어느 정도의 평민성은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 개인들 속에도, 프롤레타리아트 속에도 있으며 부르주아지 속에도 있다.  ... 이렇게 평민적 부분은 권력 관계의 외부라기보다 그 한계이며, 그 이면이며, 그 반동인 것이다." 이 권력의 구심력에 대해 항상 원심력으로 작동하는 운동으로서의 평민적 부분을 감소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평민적인 것을 평민적인 것으로서 활용하는 방법, 즉 '비행자'를 활용하는 방식인 것이다. (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339-340, 각주 1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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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7. 25. 01:39

푸코 5 읽은 것들2013. 7. 25. 01:39


<앙티-오이디푸스>의 영어판 서문에서 푸코는 특이한 견해를 제시한다. 푸코에 따르면 <앙티-오이디푸스>는 반파시즘의 책이다. 여기서 파시즘이란 ... "우리 모두의 속에 있으며 우리의 정신, 일상 행동을 홀리고 [일상 행동에서] 분리할 수 없는 파시즘, 우리에게 권력을 사랑하게끔 강요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 자체를 우리더러 욕망하게끔 만드는 파시즘"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파시즘이란 권력에 대한 복종화를 욕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푸코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다양체화와 전위를 통해 다양한 배치를 '탈개체화하기.'"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104-105)


---


이거다! 이거야!




참고로 <앙티-오이디푸스>의 영어판 서문에서 인용한 저 마지막 문장이 포함된 단락은 아래와 같다.


Do not demand of politics that it restore the "rights" of the individual, as philosophy has defined them. The individual is the product of power. What is needed is to "de-individualize" by means of multiplication and displacement, diverse combinations. The group must not be the organic bond uniting hierarchized individuals, but a constant generator of de-individu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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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구조주의적 권력 이론이 정신분석에서 빌려온 것은 오히려 대상의 '내면화' 또는 '받아들임'(프로이트) 메커니즘, 그리고 이로부터 귀결된 '주체의 탈중심적 위치'(라캉)과 관련된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주체가 어떤 대상에 의해, 즉 스스로 내면화되면서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주체는 이 '어떤 것'에 대해 '탈중심적'이다. 내면화된 시니피앙이 주체를 규정하듯이, 내면화된 권력은 그 내면화의 효과에 의해 주체를 주체 자체의 내부로부터 규정한다. 주체 자체는 권력의 이런 내면화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그 때 주체는 내면화된 권력에 대해 '탈중심적'이다. 이런 이론 형성은 알튀세르, 들뢰즈·가타리, 푸코가 발전시킨 권력 이론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라캉의 '구조주의적' 이론에 비판적 접근법을 취했지만 이로부터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영향받은 알튀세르는 호명의 메커니즘과 이데올로기적 재인/오인의 메커니즘을, 들뢰즈·가타리는 자본주의적 가족 체계에 의한 오이디푸스적 복종화의 메커니즘을, 그리고 푸코는 규율적 장치들에 의해 실현된 권력의 투여 메커니즘과 내면화 메커니즘을 각각 이론화했다. 겉보기에는 상이한 이 세 가지 이론작업은 권력의 내면화에 의해 실현된 복종화, 그리고 주체의 '탈중심적' 위치라는 동일한 개념을 공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처럼 라캉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 이론에 그 접근법의 바탕을 둔 이런 이론을 우리는 '구조주의적' 권력 이론이라고 부른다.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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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구조주의의 '결여된 주체'의 탈중심성을 권력 이론과 연결시키는 명쾌함. 나를 포함한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학자의 박사논문(정확히는 이를 토대로 수정한 책)을 굳이 번역해 출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서론만 읽어도 알 수 있다. 낯익지만 신선한 주제, 그 주제의 적확한 포지셔닝, 거기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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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7. 19. 16:19

푸코 3 읽은 것들2013. 7. 19. 16:19


"바꿔 말한다면, 그가 '타자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는 '그 자신에게' 위험한 것입니다."


당신은 위험하다. 누구에게 위험하냐고? 바로 당신 자신에게.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당신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이 도착된 논리는 근대 주체의 존재방식을 그 안쪽에서 비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나에게 수수께끼이고, 또 그러한 나는 수수께끼를 해독할 수 있는 타자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설령 그것으로 내가 희생할지라도. 주체가 그 존재를 긍정받는 동시에 타자에게 양도되는, 보호 및 보장과 강제가 한데 포개지는 위태로운 장면을 여기에서--통상 우리 눈앞에 드러나던 경계를 붕괴시킴으로써--발견할 수 있다. 근대적 주체가 자신 안에 끌어안은 불투명성--우리 자신도 건드릴 수 없는 불투명성--을 품고 있고, 이는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나의 외부에서, 즉 진리의 심급에서 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타자의 통제에 스스로 복종하는 주체가 형성된다. 이 메커니즘에 의해 해당 주체가 법의 경계까지 끌려 들어가는 것, 이른바 보안처분이 처벌을 대신하는 것과 같은 사태, 이 치환의 경향이 근대사회 안에 일관되게 상존한다는 관측이 푸코의 전제이다. 그리고 이 경향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과 지식이 엮어 내는 배치야말로 <감시와 처벌>이래 푸코의 권력론이 향하는 주요 장소이자, 이후 푸코의 온갖 관심을 저류에서 떠받치는 한 참조축이라 보인다. 


(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130-131)


 -----


앎에의 의지, 진리에 대한 욕망을 토대로 근대 주체를 정의하는 방식은 푸코의 여러 개념들 중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매력적인 것이었다. 한편 그러한 논의 자체가 이미 그가 그렇게도 비난했던 정신분석학의 주장들을 이미 함의하고 있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다. 물론 그가 정신분석학을 싫어했던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모든 사유에서 정신분석학을 제외시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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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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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2 읽은 것들2013. 6. 24. 12:43


... 혹여 우리가 푸코의 분석을 이해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푸코는 그런 희망까지도 폭파시켜 버리고 만다. 게다가 그는 그런 탈출구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이는 다소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푸코의 분석은 악을 밝혀내는데 주력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분석이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될 결과, 다시 말해서 이 악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것이 선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스스로 거리를 두고자 하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 "Foucault on Freedom and Truth," <Foucault: A Critical Read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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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6. 24. 12:27

푸코 1 읽은 것들2013. 6. 24. 12:27


"푸코는 주체 개념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그가 개인을 통하여 인간사회 전체를 분석하고자 시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그가 사회를 조직화하는 데 주체와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푸코에게 주체와 경제와 같은 개념은 겉으로는 자명한 본질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혹은 변화할 수 있는) 개념들에 불과하다." (사라 밀스,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28)


"I remain convinced that every philosophy that eliminates the category of the subject becomes unable to serve a political process." (Alain Badiou, <The Concept of the Model>)


주체의 불안정성과 정치/사회적 혁명성을 주창하는 것이 어떻게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푸코를 읽는 목표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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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6. 10. 22:00

세이초 작품 중에서 읽은 것들2013. 6. 10. 22:00


맘에 드는 것들: 조난, 아마기고개, 이외지리, 풀, 귀축, 서예강습, 증언의 숲, 짐승길, 모래그릇


지난 보름 동안 마약처럼 나를 끌어당겼던 세이초 작품 읽기도 이제 거의 막바지. 수 년만에 느껴본 독서의 쾌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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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개리 거슬(Gary Gerstle)에 따르면 20세기 미국의 내셔널리즘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구별될 수 있다. 시민적 내셔널리즘(civic nationalism)과 인종적 내셔널리즘(racial nationalism). 전자는 공통적 신념의 일관된 힘, 즉 만인을 위한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기회의 추구라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네이션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후자는 혈통에 의한 엮임이 미국을 하나의 네이션으로 규정하며, 이 미국의 국민들은 선천적으로 자기지배(self-rule)의 능력을 타고났다고 본다. 저자 찰스 맥거번은 이 두 가지에 물질적 내셔널리즘(material nationalism)을 덧붙인다. 이것은 시민적 정신과 인종적 근본주의(essentialism)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예컨대 당시의 카피라이터들이 독립선언서에 기재된 행복추구권을 강조하는 동시에 소수자들과 유색인종을 배제했던 사실은 물질적 내셔널리즘에 내재한 그와 같은 모순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미국-네이션을 곧 시장으로 파악한 광고업자들에게 있어 "물질적 현대성"은 곧 미국적 유산과 전통의 확장이었다. 상품의 소비는 미국을 하나의 네이션으로 만든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으며, 상품 판매자와 광고업자들은 애국심, 노예해방, 독립, 민주주의와 같은 국가주의적 관념들을 광고에 삽입함으로써 물질적 내셔널리즘의 확산과 소비제국으로서의 미국의 네이션화를 더욱 용이하게 했다는 것이 맥거번의 주요 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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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
2013. 5. 30. 15:47

류큐 관련 읽은 것들2013. 5. 30. 15:47


류큐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개괄. 노컷뉴스.

"중국이 이런 아픈 곳, 빈틈을 노려 오키나와 독립을 부추기지만 오키나와 주민 중 독립을 주장하는 여론은 20% 정도이다. ... 이미 오래 전부터 독립파, 미국령 잔류파, 일본 귀환파 등으로 나뉘어 여론이 분열되어 왔기 때문에 통일된 여론 형성은 어려워 보인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497159


<오키나와의 눈물> 책 리뷰. 경향신문.

"이 책은 제주도 출신 번역가가 옮겼고, 제주도의 지식인들이 추천사를 썼다. 그러고보니 탐라왕국과 류큐왕조, 4·3 항쟁과 오키나와 전투, 올레길과 ‘치유의 섬’, 제주 문화이민자와 일본 본토 출신 오키나와 이주자, 그리고 제주 해군기지와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정말 기묘할 정도로 유사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031951365&code=960205


머니투데이.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베트남 전쟁의 종전을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오키나와를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전쟁에 의해 빼앗긴 땅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돌려받는 것은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자화자찬했다."

"결정적으로 오키나와 본섬 면적의 약 20%를 차지하는 미군 기지에 대해 일본 본토 정치인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특히 후텐마 기지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던 민주당의 하토야마 내각이 당선 직후 이를 번복한 사건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본토 정치인들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http://t.mt.co.kr/view.html?no=2013051410322160604


"오키나와의 분노". KBS. 2013년 5월 13일자 뉴스.

"오키나와의 대표 일간지 류큐신문은 오늘자 사설에서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다시 복귀돼서 좋다는 현민은 유감스럽지만 소수일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오키나와의 나하시, 본토복귀 41주년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올해는 기념식을 생략했습니다. 현지의 싸늘한 분위기가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대신 나하시를 비롯한 이시가키섬 등에서는 오늘 반정부 시위가 열렸습니다."

"고작 일본에서 0.6% 정도를 차지하는 오키나와엔 일본 내 미군기지의 74%가 밀집해 있는데요.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본토 복귀 이후 40년간 오키나와엔 미군에 의한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범죄가 8500건, 매년 200건 이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http://news.kbs.co.kr/news/naverNewsView.do?SEARCH_NEWS_CODE=2659807


최근 본격화되는 류큐 독립을 위한 움직임. 한겨례. 2013년 5월 15일자.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5876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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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