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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9. 10:39

May 18 2016 일상2016. 5. 19. 10:39


1. 미국 지성사의 흐름 중 가장 "미국적"인 것을 생각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19세기 중반의 초절주의(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다. 흔히 초절주의 하면 에머슨이나 소로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마가렛 풀러 역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하나다. 당시의 미국이 고정된 성역할 관념에 철저하게 지배받던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풀러의 학자/운동가로서의 행적들은 당시로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다. 법조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유럽의 고전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받고 자란 풀러는 여성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보스턴에서 여성들과 함께 하는 토론수업을 열었다. Conversations라 불린 이 수업은 이후 5년간 이어졌고, 수업의 강의안들은 이후 풀러가 자신의 저작들을 집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산이 된다.


풀러의 말년은 비극적이었다. 최초의 여성 뉴욕 트리뷴즈 특파원으로서 이탈리아에 가게 된 풀러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고 이후 비밀리에 결혼한다. 1년 후 남편과 아이와 함꼐 미국으로 돌아오는 배를 타지만 배가 뉴욕 근처에서 침몰하는 사고로 인해 가족 모두가 사망하게 된다. 그들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집필중이었던 혁명사에 관한 풀러의 원고 역시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풀러의 갑작스런 죽음 후 그녀를 향한 동료 남성 학자/작가들의 평가는 아마도 풀러 연구자들에게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풀러 사후 2년 뒤에 출간된 풀러에 대한 회상록에서 에머슨이 그랬듯, 블라이스데일 로맨스의 그 악명높은 제노비아 캐릭터를 통해 호손이 그랬듯, (이건 읽어보진 않았지만 John Carlos Rowe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William Wetmore Story and His Friends에서 헨리 제임스가 풀러를 Beatrice Cenci에 비유하여 그려내듯, 풀러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 학자적 논리가 감성, 환상, 상상에 오염되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결혼 전에 아이를 낳는 스캔들을 저질렀으며,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도 비극적인 생의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 중에서 호손이 제일 심한데, 그 아들에 의해 출간된 한 원고에서 호손은 별로 신빙성도 없는 소문을 바탕으로 풀러를 신나게 까면서 심지어 그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혁명사 원고의 유무조차도 의심한다. 딴 얘기지만 블라이스데일 로맨스에서도 깔 사람 다 까놓고 서문에 이건 실제 역사적 인물들과는 관련없다고 써놓는 거 보면 호손은 진짜 개찌질함.) 물론 풀러의 페미니즘에는 여성의 도덕적 역할을 강조하는 등의 흠이 많지만, 문제는 당대의 남성 지식인들이 그런 단점들을 '여성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풀러는 여자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몇 번이고 '상징적으로' 다시 죽어야 했다.

2. 21세기의 한국 여자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제는 '실제로', 죽어야 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와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질 때도 혹시나 이 사람이 돌변해 내 얼굴에 염산을 붓거나 우리 부모님을 해치지는 않을까 '안전이별'을 의식해야 하고, 공공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혹시 몰카가 있지는 않은지 화장실 칸 안의 모든 구멍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고, 이제는 술집 화장실을 갈 때 혹시 모를 '묻지마 살인'(이라 쓰고 여성을 계획적으로 노리는)의 가능성조차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지나치게 예민한 것 아니냐며 요즘 말로 프로불편러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또는, 몇 달 전 페북 어딘가에서 봤던 것처럼, 한국 여성들이 지나치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여성의 비율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별로 예쁘지 않은 보통의 여자로서 운좋게 한국에서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다른 말로 하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인생을 살아온 내 경우에도 생각해보면 네다섯번 이상의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다. (심지어 이건 언어폭력을 제외한 횟수다.) 나도 이런데 다른 여성들의 경험이 얼마나 더 많을지는 차마 짐작할 수도 없다. 만약 통계를 내어 한국 여성 80% 이상이 성폭력 피해자라고 한다면, 피해자 코스프레 운운하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이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을 수 있을 수치는 몇 퍼센트 이상이어야 할까? 만약 50%라면 반밖에 안되니 별로 많지도 않네라고 할까? 예민 좀 떨지 말라는 한 마디 말로 한국 여성의 대다수가 공유하는 폭력의 기억과 그 기억들이 만들어내는, 언제나 의식의 밑바닥에 침잠해 있다가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다시 떠오르는, 언어로는 표현불가능한 불안감들을 구둣발로 짓밟으려는 발화들을 보면 나는 매번 암담함을 느낀다. 타자의 경험들은 얼마나 공유될 수 있을까? 완전한 공유가 불가능하다면, 요 몇 년 사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모든 젠더간의 갈등들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은 도대체 어디부터일까? (더불어 살해된 여성을 위한 촛불추모를 '세월호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색채를 입히지 말라'며, '이건 불법집회이니 포스트잇만 붙이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나야 된다'는 댓글들에서 보이는 현 정권의 '불법집회' 프레임이 만들어 낸 성공적인 결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정해 나가야 할까? 가라타니의 '데모를 하는 사회'는 물론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일 뿐이다.) 

십수년 후 한국 페미니즘사가 쓰여진다면 요 몇 년은 매우 중요한 해들로 기록되겠지. 큰 변환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첨예한 갈등들은 마음으로 맞닥뜨리기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갈등 자체가 변화의 씨앗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당장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장기적으로, 그러나 아주 조금씩, 너무 당연해서 뭐 대단하게 이렇게 길게 쓸 것도 없었지만, 삶이 곧 정치임을 인식하는 것부터. 그것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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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뮈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