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유없이 툭 치고 들어오는 생각들이 있다. 반지가 좋았던, 아직 어렸던 스물 여섯의 나는 커플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 순간은 침묵으로 무마되었다. 그렇게 세 번을 거절당했다. 내 멘탈이 썩어빠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차라리 딱 잘라 거절하는 말이라도 좋으니 어떤 말이라도 해줬다면 더 나았을 거다. 그는 그렇게 본인의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을 성공적으로 나에게 전염시켰다. 왼손 약지에 반지를 낀 여성의 손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지독했던 침묵의 시간들을 차례차례 떠올린다. 우리는 결혼해서 오래 함께 지내는 일 같은 건 생각할 수 없다고, 그건 아영씨도 알지 않냐고. 왜 항상 아영씨만 피해자인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런 말들도 함께.